높은 벼랑 끝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내려다 보다가
구두도 벗고 양말도 벗어 구두위에 올려놓고
막 뛰어 들려는 참에
예끼 이 사람아 발 뒤꿈치 때나 좀 씻게나
하는 고함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머리가 하얀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청년은 어이가 없어서
아니 지금 제가 무얼하려는지 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죽으려는게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죽을 사람이 발은 왜 씻어야 합니까?
그러니까 더욱 깨끗이 씻고 죽어란 말일세
참 할아버지는 이상한 말씀만 하시네요?
뭐 이상할것도 없네
자네가 물에 빠져죽으면 발에 때하며
온몸에 때가 좀 많겠는가
그게 다 불어서 떠오르면 물위에 둥둥 떠다닐거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더러운 놈 하나 죽었다고 비위 상한다고 침을 뱉지않겠나?
그리고 그 더러운 때를 먹은 고기들을 잡아서 먹으면
얼마나 속이 이글거리겠나
그럼 저더러 어떡하란 말씀입니까?
이 놈이 참 말끼 못 알아먹네
가서 목욕을 깨끗이 하고 죽으란 말이야 그것도 모르겠나?
청년은 갑자기 혼이 빠진것처럼 엉거주춤 서있자
노인이 손으로 청년을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이리와 보게 목욕은 천천히하고
어디 죽으려는 이유나 한번 들어보세나
지금 죽으나 조금 있다가 죽으나 죽기는 매 일반이니
야기 한번 들어보고 정말 죽어야 될 놈이다 싶으면
내가 등을 떠밀어 넣지는 못해도 뒤에서 박수치줌세
그 놈 잘죽었다고 쌀값도 비싼데 하면서 말일세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요 사업에 실패하고 평생갚아도 못 갚을만큼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집도 경매에 넘어가게 되어 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폭싹 망했구먼 그래서?
그게 답니다 할아버지
뭬야 그게다야?
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청년 뒤통수를
퍽소리 나도록 때리면서
벌떡 일어 났습니다
야 이놈아
그 딴 이유같지 않은 이유가지고 죽을량이면
난 벌써 백번도 더 죽었네
기분 참 더러워서 더 못 듣고 있겠네
그러면 자네한테 남아있는 것은 뭐가있나?
아무것도 남은게 없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나 한번 따지어 봄세 자네가족은 있나
예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식이 둘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디 아픈데는 없나?
예 건강한 편입니다
야 이놈아 그러면 죽을 이유가 없잖아
이 놈 아주 웃기는 놈일세
하면서 노인은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긴한숨을 쉽니다
자네 말을 가만히 듣고있자니 내가 갑자기 서글퍼져서~
자네 말고 내가 죽어야 겠네
청년은 깜짝 놀라면서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시려고 그러세요 하면서
눈이 동그랗게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자네만큼 젊지도 않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도 건강하지도 못하고 내일의 희망이 없다네
빚이야 젊으니 열심히 일하면 못 갚겠냐
돈 벌어 집은 또사면 되는 것이고 한데
그런 자네같은 혈기왕성항 나이에 죽겠다는데
나같은 늙은이야 밥만 축내지 살아서 무슨 광명을 보겠는가?
이번에는 내가 물에 뛰어들 장면이니
자넨 힘차게 박수나 쳐주게
그러면서 고 영감탱이 잘 죽었다하고 소리질러주게
그래야 죽는나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죽는 맛이 나질않겠나
그러면서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절벽위에 금방이라도 뛰어 들 기세였습니다
청년은 정신이 번쩍나서 뛰어가 노인의 허리를 끌어안았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죽겠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하십시요 제가 소견이 좁았습니다
청년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느꼈으면 되었다 돌아가서 열심히 살게
살다보면 좋은날이 분명히 올걸세
자네에겐 나한테없는 희망이 있지않는가
하나밖에 없는 인생이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네
청년은 그 노인에게 큰 절을 올리고
눈물을 닦으며
가족들에게 돌아 갔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에 평생갚아도 못갚을것 같은
빚을 십년만에 다 갚고 집도 장만하고
잘묵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려
=== 죽을 용기로 인생을 살자! ===